• 진지선생 [교육교육열매:초인계]

[배움여행]랜선수학연주회 2강:애써 눈을 돌려버린 것들에 대하여 다시 마주볼 수 있는 용기내기와 '생명의 다양성'을 요구할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미래 그려보기

2020.8.31. 제2회 랜선수학연주회



애써 눈을 돌려버린 것들을 다시 마주보기

나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매일 분리수거를 한다. 나를 포함하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캔, 유리, 쓰레기봉투, 종이 등은 언제나 분리수거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매일 새벽 쓰레기수거차량은 사람들이 분리해 놓은 쓰레기를 가지고는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 덕분에 분리수거장은 잠시 여유로워지는 듯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샌가 또다시 가득 차서 넘칠 상태에 이른다.





주말이나 명절처럼 이틀 이상 쓰레기수거차량이 분리수거장에 올 수 없는 날이 이어지면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장은 그동안 난리가 난다. 넘쳐흘러 바닥에 나뒹구는 각종 쓰레기들로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연휴가 찾아오기 며칠 전부터 ‘연휴 기간 쓰레기 배출 자제 호소문’이 게시판과 승강기에 붙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내 집 안에서 쓰레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고 포화상태를 넘어 폭발해 버린 분리수거장에 자신들의 쓰레기를 쌓고 또 쌓는다. 분리수거장 옆을 지나갈 때만 고개를 돌리고 눈살을 찌푸리는 수고로움을 잠시 감수하기만 하면 그 외의 장소에서는 청결함과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기에 이미 뚜껑조차 닫히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버린 수거함 위에 가지고 나온 쓰레기를 쿨하게 쏟아 버린 후 떠나는 것이다. 물론 쓰레기는 수거함에 붙어 있지 못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지만, 역시나 쿨하게 못 본 척하면 그만이다.

한편, 풍요의 시대인 현대 사회는 도축과 소비의 분리를 이뤄냄으로써 식문화에 가히 혁명이라 불릴만한 일들을 이뤄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즐겨 먹는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너도나도 ‘고기와 고기’만을 외치면서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남녀성역할이 고착되어 있던 10년에서 20년 전까지만 해도 매스컴을 통해 노출되는 사람들 중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고기’를 말하며 마치 ‘육식’을 즐기는 것이 남성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인양 ‘고기=야성미’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었던 것은 그나마 남자들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미지라는 걸 매우 신경 써서 관리하는 ‘여자 아이돌’조차도 좋아하는 음식을 ‘고기’라고 말하는 것이 멋지고 건강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듯 좋아하는 음식은 오직 ‘고기’ 뿐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기-고기’를 연호하게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고기가 최고’라는 분위기는 전염 속도도 빠르고, 다소 배타적인 모습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R.O.T.C 군사훈련을 받던 때 일이 생각난다. 힘든 훈련이 이어지던 중 쉬는 시간에 교관이 훈련생들을 보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훈련이 끝나면 어떤 음식부터 먹으러 갈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가장 왼쪽에서부터 한 명씩 큰소리로 교관의 질문에 답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훈련생들의 대답은 ‘삼겹살에 소주’였다. 저 멀리서부터 ‘삼겹살에 소주-삼겹살에 소주-삼겹살에 소주’라는 대답이 똑같이 이어졌다. 이제 곧 내 차례였다. 나는 일단 소주는 싫어하고, 삼겹살도 눈앞에 있으면 맛있게 먹긴 하지만 굳이 일부러 찾아 먹는 음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삼겹살에 소주’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평소에 엄마가 자주 해 주셨던 ‘고기가 안 들어간 야채 카레’의 향미가 번뜩 떠올랐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야채 카레라이스’라고 대답했다. ‘삼겹살에 소주’ 파도타기가 이어지던 중에 불쑥 ‘카레라이스’라는 대답이 튀어나오자 순간 정적이 몇 초간 훈련장 공기를 가득 채웠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훈련생들의 파도타기를 듣고 있던 교관은 잠시 후 농담 반 진담 반의 느낌으로 “미친놈이네.”라고 했으며 훈련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와 같은 ‘육식의 시대’는 엄청난 수준의 파괴를 수반하는 대량사육과 너무도 잔인한 도축의 모든 과정을 대중에게서 철저하게 분리하여 사람들을 순진무구하고 청결한 소비자로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을 통해 가속화되었다. ‘고기’는 마트에서 파는 군침이 도는 빨간 살덩어리이고 나는 그것을 우아하게 소비할 뿐이다는 감각만 있을 뿐 그 과정들 속에 숨어있는 환경파괴와 도축의 과정은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것을 분업화하여 효율성을 극도로 추구하는 가운데 배달 음식과 도시락, 밀키트의 대유행으로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과정도 ‘개인’에게서 분리되면서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소비자로 인간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우리의 지구(경제적 번영이 어느 단계 이상에 도달한 곳)는 이제 음식 재료의 생산과 가공 그리고 음식의 조리와 쓰레기 처리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소비’를 제외한 모든 단계에서 완벽하게 분리되어 버린 인간들로만 점점 채워지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로 분리되었다기보다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인간이 마치 신과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라는 믿음에 대하여 의심할 수 있게 하는 ‘지성’이 인간에게서 분리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배움의 미래를 그려보기




‘제 2회 랜선수학연주회’에서 만난 ‘모리타 마사오’는 Human과 Nature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바라보는 관점으로 인해 “기능부전”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만 2천년 전의 우연한 사건으로 지구의 대기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탄생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따뜻한 대기라는 안정적 배경이 우리가 문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게 하였지만, 약 만 년 동안 ‘4도 상승’하는 속도로 높아지던 평균기온을 약 백 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간의 활동이 그 속도를 급격하게 높이게 되었다고 한다. 인류문명을 유지해 나가는 ‘Stable Background’가 바뀌려고 하면서 지금과 같은 방식과 모습으로는 문명을 유지해 나갈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작금의 지구적 시스템의 반응인 ‘코로나 바이러스, 기후변화, 방사성 폐기물’ 등으로 지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너희들이 살고 있는 곳은 청결하고 순수하지 않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인간이 아닌 것이 이미 섞여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생명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성을 인식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코로나와 기후변화’를 통해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인간이 사는 세상은 순수하고 깨끗하지 않다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세상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일등 공신인 ‘자본주의’는 막강한 힘으로 인간을 계속 순수한 소비자로만 머무르게 만들고 있는데 말이다. 소비자로서 ‘인간의 욕망’을 강력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발산하면 할수록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는 거대해지고, 되먹임 작용이 발생하여 인간을 더욱 완벽한 ‘소비 기계’로 동화시킬 것이다. 인식의 전환은 진정 가능한 일일까?

모리타 마사오는 우선 생명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과학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계산의 만능감에 빠져있고 계산이란 정확한 규칙에 따른 정밀한 결과를 의미하지만, 생명과 삶이란 100% 예측할 수가 없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자연을 인간의 의도에 맞게 제어하고 계산해 내려고 하는 것은 생명을 생명이 아닌 것처럼, 즉 기계처럼 다루려는 것과 같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제어’에 실패하고, ‘아무리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계량해도 토양이 황폐화 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은 생명을 기계처럼 다룬 결과이고 그래서 지금껏 실패 해 왔다는 것이다.

‘기존의 농업’을 보면 생명에게 기계와 같은 규칙을 적용했다는 걸 알게 된다. 경작을 통해 다른 것들은 모조리 쫓아내고 하나의 품종만을 줄을 맞춰서 심어놓고는 비료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벌레만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문제해결을 위해 ‘농약’을 사용해서 벌레를 죽인다. 정밀한 제어를 위해 이렇듯 인위적인 규칙을 늘려가며 생명을 기계처럼 다루는 것을 통해 지구의 땅은 파괴되고 있다. 생명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없는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왔는데, 점점 자연이 생물학적 다양성을 잃어가면서 인간 역시 그 존재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모리타 마사오는 ‘협생농업’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학교를 정글화 시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메마른 땅에서도 1년 만에 정글화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하면서 학교는 더욱 쉽게 ‘정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현재 모리타 마사오는 학교를 정글화 운동을 ‘폐교’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것도 들려주었다. 학교를 정글화하는 것을 통해 우선 아이들이 인간이 아닌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인간이 인간들로만 둘러쌓여 있다보니 인간이 아닌 것들과는 관계 맺을 줄을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들과의 긍정적 관계 맺음을 통해 역으로 인간들끼리의 관계맺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생명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된다면 서서히 미의식의 변화도 찾아올 것이다. 줄을 맞춰 깔끔하게 펼쳐진 밭이나 풀 한포기 없는 아스팔트로 덮혀진 땅이 아니라 생동감이 넘치는 생명력을 그려낼 수 있는 정글화된 교정이 더 아름다운 것이라는 미의식이 자리잡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활동하는 공간에 생명의 다양성이 깃든 정글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적 인식이 미래에는 당연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모리타 마사오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전복적 사고’이다. 미래를 위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간의 수를 제한해야 한다거나 인간의 활동을 위축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늘어나고 인간의 활동이 많아질수록 지구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살기 좋아진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우리는 보기 싫은 것, 하기 싫은 것, 더러운 것 등에 대하여 그동안 고개를 돌리고 보지 못한 척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와 폭우, 가뭄, 태풍 등의 기후변화로 인해 그러한 삶의 방식은 유효기간이 다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은 지구의 입장에서보면 해충처럼 살아왔다. 이제는 해충이 아니라 ‘나비’처럼 지구를 살리는 삶을 사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에 이미 도달해 있는지도 모른다.

배움의 미래를 생명의 다양성을 요구할 수 있는 ‘감수성’으로도 그려봐야 한다. 생명의 다양성으로 생동감이 있는 생명력이 넘쳐 흐르도록 내년부터는 우리반 텃밭에서부터 ‘협생농업’을 실천해 봐야겠다. 감자밭이나 고구마밭이 아닌 다양한 식물과 다양한 벌레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정글’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러한 정글을 경험하면서 아이들 또한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감수성’이 자라났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