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선생 [교육교육열매:초인계]

[배움여행]일리론 1강:어디선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이야기-진리론과 무리론 그리고 일리론, 갑자기 낯설게 보여지는 혁신교육에 대하여

8월 30일 업데이트됨

지금까지의 배움여행은 이동연구소가 문자 그대로 서울, 천안, 부산, 일본, 제주도, 경기도, 강원도 등을 이동하며 진행해 왔었다. 학문이나 연령, 세대 간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의미를 포함하여 말 그대로 지역, 장소의 경계를 쉬어가며 이동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물리적인 장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제약이 생겨버렸다.



'2020 이동연구소'는 코로나 사태에 의해 계획되었던 배움여행이 몇 번씩이나 연기가 되거나 취소가 되어버리는 사태를 겪은 다음 낯설게 변해버린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ZOOM'으로 진행되는 '원격 여행'을 새롭게 등장시키며 배움에 대한 갈증에 응답해 주었다.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랜선여행' 가운데 8월 20일에 새롭게 시작하는 '배움여행'의 주제는 바로 '일리론'이었다. 일리론 첫번째 강의는 일리론에 대한 총론으로 채워졌다. 나는 그동안몇몇 사정들로 인해 가까이 하지 못했던 배움여행에 다시 참여하게 되어 높은 기대감과 함께 'ZOOM강의'에 참여하였다.



8월 20일 저녁 8시에 시작된 강의는 저녁 10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일리론 첫번째 이야기는 하나의 현상을 보고 진리론, 무리론, 일리론이 어떻게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내어 보여주었다.


정말 다양한 사례로 진리론, 무리론, 일리론을 비교해 보았다. '돈', '수직선과 음수', '연극', '회화분석', '장애', '8.15광화문시위사태' 등의 현상을 진리론, 무리론, 일리론의 안경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반복적으로 살펴가는 것을 통해 일리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이 생길 수 있게 되었다.



유아의 태도와 구별되는 '어른의 태도'로서의 일리론은 다음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환상' 또는 '디자인 된 세상'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어딘가에 디자인되지 않은 참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진짜 세상을 찾아다니는 것이 진리론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디자인 되어 있다라는 깨달음을 통해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추구해야 할 가치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론이다.


반면, 일리론은 '디자인 된 세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면서도 '우리가 디자인했기 때문에 우리가 또한 바꿀 수 있다'라는 변화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태도이면서 너희들이 만든 세상도 환상이고 내가 만든 세상도 환상이지만 아무래도 내 쪽의 환상이 더 호흡하기 편한 것 같으니 내 쪽으로 넘어오지 않겠느냐고 권할 수 있는 태도를 추구하는 동시에 더 좋은 환상이 생기면 그 때는 함께 손잡고 더 좋은 곳으로 넘어가자고 말하는 여유로운 태도를 가진다.


그리하여 일리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진리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진리의 '유통기한', '유효기한'의 끝이 임박했다는 걸 느끼며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유효기한이 다하는 시기가 곧 다가온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해서 지금 잘 작동되고 있는 진리를 당장 폐기처분해서는 안된다는 '그 머뭇거림'이 포인트이다. 아직 유효기한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것 보다는 새로운 진리를 길어 올리기 전까지는 일단 기존의 진리를 잘 사용하자는 망설임의 태도야 말로 일리론이라는 것이다.



이번 일리론 1강 수업을 들으면서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단어가 바로 ‘유통기한을 인식함’ 이었다. 일리론으로 교육을 바라보자면 학교라는 사회구조는 만들어지게 된 그 나름의 역사적인 형성과정 속 의의가 있으며 아직까진 유통기한이 남았기에 교육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당장 폐기하려 달려드는 성급함을 보이거나 반대로 미래사회에서도 학교가 영원불멸할 존재 의미가 어딘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경직되기보다는 학교의 유효기한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보게 된다. 그래서 일단 현재의 시스템을 잘 사용해 나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학교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자세를 갖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이 잘 될지 안될지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끝난 학교를 이을 다음 학교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그리고 내가 그 가능성을 상상해 낼 수 있는 존재일까?

기존의 강력한 환상에서 새로운 환상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새로운 학교가 나아갈 모습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져 왔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면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른바 ‘혁신교육’의 목표가 과연 진짜 우리들이 바라는, 내가 바라는 모습은 맞는간가라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이다.


최근 학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학생들이 나오지 못한 채 ‘원격수업’을 꽤 오랫동안 진행하였고 지금도 1/3 등교나 2/3 등교를 하며 등교 인원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있는 모든 시간동안 항상 거리 유지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가 있었다. (우리 학교 한정일 가능성도 있다.)

먼저, 동료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효능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존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만족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동료선생님들께서 올해 자신들의 교육활동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만났던 담임선생님들 모두를 어김없이 괴롭게 만들던 아이를 올해 맡게 된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가 자신의 교육활동으로 인해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만나면 부쩍 자기가 했던 교육활동 사례를 나눠 주시려 하고 있다. 당연히 예전에도 학교에서 그러지 않았어?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겠으나 작년까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동료 선생님들과 만나서 하는 이야기라는게 주로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수업에 의해 받은 상처, 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한탄, 하루가 멀다하고 자꾸만 터져 나오는 교실문제상황들에 대한 괴로움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학교의 모습이 바뀌자 선생님들의 모습도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 나도 또한 마찬가지인 걸 자아효능감이 높아진 선생님들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교육은 만남이고, 관계이고, 활동 중심이어야 하고, 연속적이어야 하고, 협업을 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하게 되고, 거리를 유지하고, 개인 활동을 많이 하고, 원격수업 등으로 모둠활동이 상당히 제한되는 상황에서 교사들의 효능감,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사들 뿐만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학생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다툼이 없어졌다. 미움이 없어졌다. 학교폭력이 없어졌다. 친구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와 집중력이 살아났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습 상황 안에서 아이들의 성공 경험이 늘어났다. 그동안 인성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위해 집단 상담, 단체활동 프로그램 등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친구들끼리 다투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음에도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로 개인이 고립되자 오히려 원했던 결과가 나온 듯 보이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너무나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학교의 시스템들과 미래 교육, 혁신 교육, 좋은 교육이라며 전국적으로 대유행을 맞이한 혁신교육과 관련된 것들이, 코로나사태로 인해 이어가기 힘들게 된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하자 예전에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되던 것들까지도 오히려 낯설게 보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참 고민스럽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도입된 원격수업을 진행해 가면서 오히려 교사들의 효능감이 높아지고 학생들의 친구관계가 좋아지는 현상을 통해 지금껏 교육을 '혁신'을 한다고 말해 왔지만 그러한 언설들조차 여전히 기존 프레임에 묶여있는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숙해 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정도'의 교육에 대한 대단한 상상을 이렇게 기존 프레임에 속절없이 묶여있을 뿐인 내가 상상해 낼 수 있을까라는 무력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일리론자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모호함을 견디며 불편한 곳으로 숨을 참고 들어가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무엇이 '혁신교육'인지, 무엇이 '교육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불안하고 무력한 느낌도 들지만 일단 숨을 참고 계속 머무르면서 '일리'를 찾아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이제 총론을 지났으니 2강부터는 좀 더 깊은 이야기로의 여행이 이어질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는 긍정의 에너지가 벌써부터 충만하다.


(배움여행은 활짝 열려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함께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