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선생 [교육교육열매:초인계]

[TOB in 인지학]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에 대해서 '비과학적'이라며 보내는 비난은 과연 온당한가? '팟캐스트-과학하고 앉아 있네'와 과학자들의 방법, 그리고 교육의 과학적 탐구

팟케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즌6-5 물질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게 된 걸까 중에서...

-전체 내용 중에서 ‘뉴튼의 발가락’ 일부 내용을 전사함.-


(K박사)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입자는 이 17가지(전자, 뮤온, 타우온,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온중성미자, u쿼크, c쿼크, t쿼크, d쿼크, s쿼크, b쿼크, 힉스입자, 광자, 중력자, 글루온, 약력자)로 다 설명이 되죠. 이게 다라는 보장은 없어요.

(최팀장)이게 보면 제가 그 박사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렇고 지난 번 이강형 박사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느꼈는데,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 보면 ‘왜.’ 왜 이걸 생각하고 있는거야.

(기자) 외워야 되요.

(최팀장)아니 뭐냐면

(K박사)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은

(최팀장)그러면 사실 이야기를 전혀 못 따라가는데. 그러니까 이게 아까도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을 해서 이렇게 이렇게 가는데 과학자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을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왜 그렇지를 생각하지 않고 아 그렇게 되는구나. 그러면~. 이렇게 아무 의심없이 바로 아 이렇게~ 남이 뭘 해 놨으면 어~~ 이렇게 하고서는 바로 넘어가야 되는데 우리 청취자분들이 예를 들어서 이 이야기가 되게 어렵게 느껴지시면 만약에 ‘왜 기본입자는 17개일까?’, ‘왜 왼쪽으로만 돌까?’ 이런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이게 되게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K박사)아주 정확한. 지금 들으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 싶을 것 아니에요? 그죠? 저도 몰라요. 지금

(최팀장)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K박사)예. 그러니 제가 뭐 지금 특별한 이야기를 했나요?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을 알려주는 것 뿐이잖아요.

(최팀장)이렇게 했더니 이렇게 돼서 그래? 그럼 여기서 한번 해볼까 그랬더니 또 이렇게 되가지고... 그냥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났다는 이야기거든요.

(K박사)그러니까 왜는 왜는 그냥 (몰라요.) 깨져야 되니까? 일단 깨져야 되니까. 안 깨지면 안 되잖아요.

(...중략...)

(최팀장)예전에 이강형 박사님이 그런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페이스북에서 무슨 이야기 하다가 뭐 제가 머리 좋아가지고 그런 이런 거 하면서 뭐 머리 나쁜 사람들이 잘 이해 못한다 이런 식으로 입자 물리학자를 제가 매도했더니 그러니까 외우는 걸 싫어해가지고 이거 한 사람한테 무슨 말하는거냐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우린 진짜 외울 거 없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것이 어떤 암기력이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생각 안 해봤는데.

(K박사)물리 쪽 사람들은 외우는 걸 귀찮아해요. 귀찮아하기 때문에 안 외워도 되는 쪽으로.

(최팀장)내 소중한 뇌세포를 그런데 쓸 수 없다 뭐 그런건가?

(K박사)그러니까 저는 이것도 많아 보이는거죠. 그래서 자주 이야기하지만 입자 물리학이 마치 생물학 같은 느낌이 든다고.

(중략)

(K박사)그러니까 뭐 하여튼 이게 알아듣기 힘드시겠지만 누누이 이야기 하지만 과학은 일단 익숙해지는게 중요하다. 이해가 안되면 외우는거다. 외우다보면 이해한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게 이해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기자)최근에 어디서 그 이야기가 나왔더라? 그 양자역학 세계에는 과학자들도 이해. 상상이 안 되는 거냐고. 이해가 안 되는 거냐고 했더니 너~~무 당연하다고. 그냥 그래가지고.

(K박사)그럼요. 양자역학은 이해하는게 아니라 계산하는 거라고 그래요. 외우면 됩니다. (...중략...) 제가 전에 이야기 했는데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이 불가능하다]

(최팀장)너무 와 닿는 말이죠. 맞아요.

(기자)명언이었죠.

(K박사)구별이 안되요. 구별할 방법이 없어요. 자기도 구별이 안되요. 스스로도. 안다고 생각하게 되는거죠. 그리고 이해라는 건 항상 오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해했다는 말은 다 틀린 말이에요. 이해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거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퇴근 이후에 약속 잡기가 금지가 되어있었거든요. 다 귀가. 금지였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지방에 내려가 있잖아요? 자취 바로 사무실 바로 옆에서 방을 얻어서 생활하는데 퇴근을 하면 6시 10분이에요. 집에 가면. 나머지 6시간을 혼자 있어야 되잖아요. 그 때 시간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이 어쩌다가 수학책을 본 거에요. 그래서 그걸 보다보니 물리학 쪽 수학 내용인데 보다보니 제가 그동안 이해하고 있던 게 아니였어요. (중략) 그러니까 나는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때의 착각인 거에요. 나중에 보면 아 내가 잘못 이해했네도 있고 그 때 이해한 것이 이해한 게 아니구나 깨닫게 되는게 많을 거에요. (중략) 그래서 암기가 나쁘고 이해가 좋다 이거는 절대 잘못된 부분이에요.

그리고 몰라도 궁금할 수 있어요.

...후략...

과학적인 탐구방법과 발도르프 교육. 인지학을 과연 비과학적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지금부터 쓰려는 글은 시차가 2년쯤 되는 서로 다른 시기에 있었던 2번의 경험이 어느 날 ‘팟캐스트’를 듣던 중 연관성을 가지고 합쳐지는 과정을 거치고 나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어주면서 찾아왔다. 나는 2017년부터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과 인지학을 공부하면서 실제 나의 교실에서 배운 내용들을 나름대로 실천해오고 있다. 이러한 실천을 꾸준하게 지속하다보니 주위에서 ‘도대체 그게 뭔데 그러느냐?’라는 질문을 가끔 받곤 했고, 그 응답으로 내가 공부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발도르프 교육에 대하여 2번 정도 설명을 하게 되었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교육이 인간을 위한 작업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교육적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눈에 보이는 신체만이 아닌 영혼과 정신까지 3가지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되어 가는 인간으로서 신체, 영혼, 정신은 각기 다른 속도로 성숙 또는 성장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출발하게 되는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설명을 2년 전에는 8시간동안 진행했었고, 최근에는 간단하게 20분정도 이야기를 했는데 굉장히 놀랍게도 나의 말을 듣고 난 후의 사람들의 반응이 모두 같다는 걸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놀랍다고 느끼는 것은 나 혼자일 것이고 모두 같았던 사람들의 반응이 보편적인 거라고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 같은 반응이란 이런 것이다. 인간 존재가 신체, 영혼, 정신의 합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발도르프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서 자신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비과학적이어서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당장 눈앞에 증거를 가져오지 않으면 근거 없는 주장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면서 마음의 문을 닫고 팔짱을 굳게 걸어 잠가버린다. 심지어 냉소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당시에 나는 영혼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발도르프교육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합당하고도 당연한 반응이지만, 일단 의심스러움을 괄호로 묶고 발도르프교육이 인간과 교육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진득하게 듣다보면 놀라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발도르프교육이 인간 존재를 신체, 영혼, 정신의 합이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자동적으로 비과학적이라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 실험을 통해 외적으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만 실재하는 것이라는 현대의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논리성과 합리성을 주장해서는 안 되는 걸까?

어느 날 언제나처럼 팟케스트를 듣던 때였다. 물질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이었다. 한참을 이해하지 못할 소립자(lepton), 대칭성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던 중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로 과학자의 방법, 과학자의 태도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과학자들의 방법이라고 해서 모두 과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100% 장담할 수 없지만, 최소한 과학자들이 현상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새로운 법칙이나 새로운 물질들을 발견해 나가는 방식을 함부로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이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과 같은 방법과 태도로 어떤 현상에 다가갔다고 한다면 절대적 과학성이 자동으로 부여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신비주의라거나 미신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에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과학하고 앉아 있네’에서 소개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방식과 태도란 한마디로 ‘왜?’를 묻는 시기를 유보하는 자세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왜’를 묻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성급하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거나 ‘목적’에 집착하는 것이 방해요인이 되기에 잠시 유보해야 된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기본입자를 탐구해 나가는 과학자들의 여정’이 최종단계까지 도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결코 풀릴 수 없는 물음이 있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와 전자, 한발 더 미시세계로 들어가서 쿼크나 힉스입자 그리고 4가지 힘을 매개하는 입자, 혹시라도 더욱 깊은 세계로 들어가서 어떤 끈을 관측하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풀릴 수 없는 물음이란 바로 ‘물질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것이다. 정말로 물질을 구성하는 최초단계의 기본 입자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이후에 ‘의미’나 ‘목적’을 유추할 수는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왜’를 묻는 것은 물질의 구조를 탐구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된다. ‘물질과 반물질은 왜 비대칭인가?’에 집중하여 어떤 의미를 발견해 내려고 하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과학적으로 물질의 구조를 탐구해 나가려면 현상을 직관적으로도 살피고, 때로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빅뱅이 있었을 때 물질과 반물질이 비대칭 상태여야만 한다.’라는 것을 일단 그래야 하니까 그런다고 인정하고 현재 할 수 있는 일부터 즉, 비대칭인 사례를 찾아 나서야지만 새롭게 정립한 이론으로 자연을 더 높은 확률로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연구자 역시 ‘왜 비대칭일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전 이론을 토대로 더 정밀한 함수로 자연을 설명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과학은 발전하게 된다.

이제 과학 분야에서 내가 있는 교육 분야로 이동해 보려고 한다. 요즘 말해지는 교육의 주요 키워드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행복’이다. 교육을 말하면서 학생, 삶, 행복 등의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혁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행복’을 교육 혁신의 전면에 등장시킨 질문은 바로 ‘왜 교육을 하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에서 출발한 물음이 도착하는 곳이 ‘행복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행복을 위한 교육은 다양한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지금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하면서 ‘놀이의 중요성’, ‘내가 좋아하는 것 찾기’, ‘진정한 나 찾기’ 등이 강조되기도 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미래핵심역량 기르기’, ‘나에게 어울리는 꿈 찾기’가 중요시되기도 한다. ‘왜 우리가 이 짓(교육)을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찾고, 목표달성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금 학교가 하고 있는 교육혁신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그 노력들을 들여다보면 구멍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미래핵심역량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와 같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요청하는 질문에는 그저 ‘잘~ 하면 된다.’라는 수준에서만 이야기가 머무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육혁신의 노력들이 특출한 개별 선생님의 개인기나 순발력 등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약 10년 정도 지나다보니까 성취감보다는 피로감이 더 쌓인 채 점점 회의감에 고개를 드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아진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되짚으면서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수준은 10년 전보다 얼마나 더 깊어졌는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선생님이 되기 전에 비해서는 진보했을까?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는 역시 변화했을까? 사람마다 평가방식이나 기준이 다르기에 결과를 달리 말하겠지만 나는 그다지 변화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겠다. 원인은 바로 이점에 있지 않을까? ‘교육’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삶이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일단 눈앞에 있는 현상을 정밀하게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늘 제자리만 맴돌고 혁신교육의 결과에 대한 시선은 뜨뜻미지근한 것이 아닐까?

‘왜 교육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최우선적으로 마음속에서 발했던 이유는 ‘교육’과 ‘인간’에 대해서 별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눈앞에 놓였을 때 바로 내 앞에 있는 것부터 해석이 가능하게 탐구해야 하는데, 조급함에 의미부터 찾으려다 보니 과학적인 탐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닐까싶다.

한편, 발도르프교육은 조금 달라 보인다. ‘왜 하는가?’로 출발하지 않는다. 인류 발달의 역사와 그에 따른 과제, 사회문화의 현 상태와 나아가야할 방향, 인간 존재와 삶의 모습 그리고 성숙의 과정 등에 대해서 우선 이야기한다. ‘왜?’에 대한 답은 그러한 탐구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지만 순서가 다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체, 영혼, 정신 등 인지학 용어들이 나온다. 인간 존재와 삶을 관찰하고 설명해 내는데 신체, 영혼, 정신이라는 개념이 엄청나게 큰 도움을 준다.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계들이 인지학적 개념들로 인해 확장되어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진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양자역학에 대하여 ‘양자역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인지학은 유물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체적으로 해석해 내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자, 이제 처음으로 되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마칠까한다. 인간에 대한 탐구와 인류문명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에 따르는 교육의 과제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가는 인지학에 바탕을 둔 발도르프 교육과 현시대의 주류 교육. 어떤 방법이 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발도르프 교육의 방법과 혁신교육가들의 방법 중 어떤 것이 교육의 장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해석해 내는데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과연 물질주의를 뛰어넘어 인간의 생명력, 의지, 감각, 감성, 사고, 정신까지도 똑바로 다가서려 하는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서 ‘신비주의적’와 ‘비과학적’, ‘종교적’의 꼬리표를 자동적으로 달아버려도 되는 걸까? 오히려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의미를 찾고 그곳에서 목적부터 찾는 주류 교육이 과학자들의 방법과는 거리가 먼 ‘비과학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나에게는 조만간 발도르프교육과 인지학에 대한 소개를 해야 할 또 다른 기회가 있을 예정이다. 내가 말을 꺼냈을 때 사람들이 인지학의 인간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최소한 ‘유물론적 이유에 의한 거부감’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발도르프교육에 대한 나의 팬심으로 그러하길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떻게 될지 사실 좀 기대가 되기도 하는 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