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선생 [교육교육열매:초인계]

[TOB in 인문]Teachers, be ambitious and be proud of ourselves:코로나 시대, 나태함에 빠져 직무태만에 빠졌다고 비난받는 교사들을 보다

Boys, be ambitious 첫 문장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뒷말은 Boys, be ambitious, not for money, not for self accomplishment, bot for the evanes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이다. Teachers, be ambitious and be proud of ourselves 이 글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Boys, be ambitious 패러디로 물렁물렁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떠올린 제목은 ‘교사를 춤추게 하라.’였는데 아무래도 말의 목적지를 밖이 아닌 나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 Teachers, be ambitious and be proud of ourselves로 정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최근 SNS에 불고 있는 특정한 경향성을 띤 교사들의 여러 가지 글들 때문이다. 교사들이 경향성을 가진 글을 올리는 출발점 중에 하나는 바로 코로나 사태에 인한 원격수업에 대응하는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비난이다. 맘카페 등 주요 커뮤니티 공간의 글은 너무 자극적이기에 그나마 정선된 언어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교육청 민원게시판 글을 첨부해 본다. 교사들을 비난하는 논리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하나의 예시로 보면 되겠다.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어서 굳이 내 의견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저런 학부모의 민원들에 대하여 교사들이 특정 경향성을 가진 글들을 쓰기 시작했기에 나도 하나의 의견을 글로 작성하게 되었다. 참고로 학부모의 비난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보내주는 관심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난에 대하여 과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부모의 비난은 넉넉하게 잡아도 70%는 교육의 발전이나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안마다 다르게 이야기 한다는 댓글의 학부모나 그전에는 몰랐다가 이제야 알게 됐다고 하면서 초등 교사들의 근무태만을 지적하는 민원인 학부모는 ‘내가 단언컨대 사안마다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를 달리 해 온 것이 아니라 사안들마다 사사건건 부정적 평가만을 일삼아 왔을 것이고, 예전에는 교사들이 근무태만한 줄 몰랐기에 비난의 마음을 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다른 사안에서 교사들에 대해 비난의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즉, 비난의 목적이 현상을 좋은 쪽으로 개선시키거나 하다못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욕망대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함도 아닌 그저 비난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현상은 재료일 뿐. 교사의 위치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림으로서 그 자체로 자신들에게 유의미하기에 학부모들의 비난을 위한 비난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논쟁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부모들과 사회가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순간 이미 원하는 바를 충족했기 때문에 비난 후 교사들이 보이는 반응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애초에 논쟁이 되지도 않는다.

이미지 썸네일 삭제 https://blog.naver.com/badteachers/222078096243

( 교사를 비난하는 행위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에 대한 글은 링크된 본문 중 2번에 있다.)

그런데 저런 비난에 반응하여 비슷한 류의 글이 포스팅 되기 시작하였다. 바로 ‘줌’ 같은 프로그램과 앱캠을 통한 자신이 했던 실시간 랜선수업 결과를 소개하는 글이 그것이다. 저 위에 있는 민원인 학부모가 비판하는 것과 같은 ‘문자로 남이 만든 동영상 링크만 떨렁 보내고, 아무 연락도 없는 수업’과 이른바 쌍방향 수업이라고 칭하는 앱캠을 통한 수업은 온라인상에서 드라마틱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두 가지 유형의 수업에 대한 가치판단은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미 수업에 대한 설명 속에 ‘떨렁’이라던가 ‘ㅇㅇ만’, ‘던져주고’ 같은 단어로 인한 부정적 평가가 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앱캠 수업은 ‘쌍방향’, ‘실시간’, ‘피드백’이라는 얼핏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단어들로 인해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자신이 했던 이른바 쌍방향 수업결과를 포스팅하는 선생님들의 의도는 좋게 보자면, 언론이나 SNS에서 비난하고 있는 유형의 ‘태만’한 교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열심히 하고 있는 훌륭한 교사도 많다는 밖으로 외침이면서 동시에 동료교사들의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마음을 다잡고 같이 힘을 내자는 안으로의 호소일 것이다. ‘쌍방향 수업’에 대한 포스팅이 계속 이어지던 중! 나도 평소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선배님이면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선생님들의 셀럽(!)이기도 한 모 선생님께서 ‘정규분포’라는 단어를 꺼내시면서 대부분의 훌륭하고 적극적이며 열심히 하는 80%의 교사와 나태하고 책임감이 없으면서도 열심히 하려는 교사를 끌어내리려고만 하는 20%의 이상한 교사 이야기를 꺼내시는 걸 보고는 뭔가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계속 이어지는 포스팅이 웹캠 등을 활용한 적극적인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 공유라는 사실을 보건데 아마 ‘열심히’의 의미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웹캠수업과 학습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것이라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 ‘나태한’의 의미는 문자로 동영상 링크만 보내는 것이라는 게 분명하다.


사실 ‘열심히’와 ‘나태한’을 두고 하는 가치평가에 대해 이견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말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교사로서 10년 정도 살다보니까 우리 사회가 교사를 ‘아이’ 다루듯 대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내밀한 부분이기에 다른 나라 교사들의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최소한 우리나라는 그렇다. 한명의 어른인 교사를 ‘아이’ 다루듯 하는 것을 보면 교사라는 직업이 과연 개개인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직업윤리를 발휘해야하는 전문직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현재진행형인 검찰 및 법원개혁과정과 의사들의 집단진료거부 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 폐쇄적인 전문직들은 태생적으로 ‘승진제도를 기반으로 위계질서가 견고하면서 제한된 수급구조에 의해 고착되어진 비민주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라는 특성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다. 하지만 상명하복의 문화가 뿌리 깊을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의 수준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아이’, 즉 미성숙한 존재를 대하듯 한다는 것이다. 언론에 비춰지는 다른 전문직 집단은 비민주적이고 위계질서가 견고하다고는 하더라도 상급자나 선배들이 하급자나 후배들을 ‘아이’ 다루듯이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유독 교사들은 ‘미성숙한 존재’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교사들을 대할 때는 당연하고 심지어 같은 교사집단 내에서도 상급자는 하급자를 ‘아이’ 다루듯 대하려고 한다. 사회가 교사들을 어린 아이 취급하는 것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사례가 널리고 널려서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경제학적 관점에 의한 추론으로 계급적 욕망이 원인이라는 진단도 내린바 있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대신 교사집단에서의 사례는 2개 정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마침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육계 내부에서 교사를 ‘아이’처럼 대하는 사례 몇 가지가 최신 업데이트되었기 때문이다. 온라인개학이 시작되던 4월 무렵 모 교육청에서는 ‘세세한 원격수업 지침’을 내려주고 잘 지키는지 점검하려고 하면서 그 이유가 ‘열심히 하는 교사에 묻어가는 무임승차 교사를 막기 위해서’라고 인터뷰하였다. 즉, ‘맡은 일을 안 하고 노는 사람이 있을까봐 걱정된다.’라는 것이다. 또 교사의 재택근무 지침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껏 3번 이상 반복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상승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교육청은 교사에게 아침마다 매일매일 관리자에게 출석공문 보내기와 재택근무 중 무엇을 했는지 시간별로 상세하게 기록한 보고서 제출하기 등의 지침을 내렸다. 왜? ‘집에서 할 일을 하지 않고 놀까봐 검사하겠다.’는 것이다. 하나 신기한 것은 그러다 하루가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출석공문 보내기는 취소되고, 재택근무결과 보고서는 간소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지침이 변경된다. 여기서 더더더더 신기한 것은 세세한 관리지침을 보냈다가 하루가 지나 다소 완화시켜주는 일처리 방식이 매번 온라인 수업 전환기마다 벌써 3번째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어른이 아이 다루듯, 조련사가 동물 다루듯이 감시하면서 사탕을 흔들어대며 말 잘 들으면 준다고 당근을 내밀고 몽둥이를 들고 위협을 가하면서 말 안 들으면 벌 줄 거라고 채찍을 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이 반항을 하면 살짝 풀어주는 척을 하고 말이다. 교사라는 집단은 관리, 감독이 필요 없으며 모든 것을 자율에만 맡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교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방식이 꼭 어린 아이 다루듯 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규격품이 아니다. 교육내용과 방법이 고정되어 있고, 그렇게 하나의 기준에 의해서 정해진 상품이 아닌 것이다. 물론 공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비슷해야 하지만, 서울 모 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과 광주 모 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같은 것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업은 교과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사’라는 인간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만난 내 앞의 ‘선생님’이 가르치려는 교과를 어떻게 만나왔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자기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지를 관찰하면서 배움이 시작된다는 의미 일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수업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아이들을 향해 힘껏 내던지는 행위이다. 이 때 그 선생님의 교육방식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존재를 던지고 있는 행위의 가치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존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지 않을까싶다. 어떤 선생님의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선생님이 어떤 경험을 하며 살아왔는지, 어떤 인간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아동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들과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지금까지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못했다. 한명의 교사가 어떤 수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 듯 보인다. 학생들에게야 ‘선생님’이지만, 사회와 교육계에서 교사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 말이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숙제를 내주고 꼼꼼하게 채점한 뒤 사탕을 주며 칭찬하거나 나무라는 식으로 지금까지 교사들에게 ‘좋은 수업 모델’을 제시하고 수행평가를 한 뒤 승진점수나 성과급 혹은 명예 등을 내밀었다. 좋은 수업 모델은 최근 IT 기술의 발전과 수익사업화로 인해 더욱 정교화되고 범용성 높게 제시되고 있다. 이제 제시되는 ‘좋은 수업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몇 번의 연수 등을 통해 바로 적용하기만 하면 긍정적 피드백들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꽤 많은 시간이 흐르다보니 이제 교사가 수업에 자기 존재를 던지지 않아도 상관없게 되어 버렸다. A부터 Z까지 친절하게 제시되는 ‘좋은 수업 모델’을 비슷하게 실행하기만 해도 되니까 말이다. 문제는 ‘좋은 수업 모델’이 짧은 주기로 계속 바뀐다는 것이긴 하지만 어차피 내 존재가 부정되는 것도 아니니까 재빨리 갈아타면 그만이다. 딱히 문제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교사집단 전체로 봤을 때는 내부에서 문제가 곪고 있는 것 같다. 수업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교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그저 모델링이 잘 되었는지 살펴볼 뿐이다. 어떤 수업이 실천되었을 때 그 주체인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살피고 또 다른 주체인 학생들을 알아가면서 수업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까지 가치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수업 모델’을 몇 개 소환하여 비교해 보고 즉각적으로 ‘좋은 수업 VS 나쁜 수업’ 또는 ‘열심히 하는 교사 VS 나태한 교사’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교사는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서로를 아이처럼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끼리 놀면서 말하는 것처럼 ‘야 이건 우리 형이 알려 준 대로 해야 되는 거야.’ ‘우리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 ‘그거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했어.’ ‘너 그렇게 하면 우리 선생님이 혼내줄 거야.’ 라는 수준의 대화를 진지한 얼굴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합기도 사범이기도 한 우치다 타츠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국에 퍼져있는 수많은 합기도 사범들 중에서는 자신이 보기에 정말 형편없이 지도하거나 심지어는 왜곡하여 지도하고 있는 사범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못 가르치고 있는 사범들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자신의 스승에게 털어놓게 된 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스승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잘못된 방법으로 지도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범들을 고치려고 하지 말라. 그 또한 합기도가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나의 합기도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켜보다가 필요한 것이 있어 보일 때 아무 말 없이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의 합기도가 발전하는 것이지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남을 고치지도 못할뿐더러 나의 합기도도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어른의 태도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SNS에 공유되는 다양한 사례들로 보았을 때 코로나 시대에 실시간 화상수업으로 적극적인 원격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있지만, 문자에 떨렁 ‘동영상 링크’만 보내는 선생님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정규분포에 따라 80%의 훌륭하고 적극적이며 열심히 하는 교사가 적극적 원격수업으로 학부모의 요구와 직업적 책무에 충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20%의 나태하고 책임감이 없으면서도 열심히 하려는 교사를 끌어내리려고만 하는 교사들이 문자에 떨렁 ‘동영상 링크’만 보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집단이나 20%의 하위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20%를 보고 전체를 욕하지는 말아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아니,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20%의 나태한 교사들을 나는 ‘아이’로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화연락도 한번 없이 문자에 ‘색종이 접기 동영상 링크’만 떨렁 보내는 교사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태해서? 무임승차자라서? 시대를 읽어내지 못해서? 그렇게 쉽게 평가해도 되는 걸까? 어른이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를 보고 ‘너 이렇게 하려고 그런 거지?’라는 수준으로 한 명의 교사를 평가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만약 위에 있는 ‘민원인’의 주장과 똑같이 정말 문자로 ‘색종이 접기 같은 동영상 링크’만 계속 보내거나 과제물만 던져주는 수준으로 지금껏 원격수업에 대응해 왔다고 한다면 나는 그 교사의 모습이 즉각적으로 ‘나태함’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강심장’으로 느껴진다. 교사라는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의 특성상 아무런 핑계 없이 ‘강심장’이 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욕먹을 것이 뻔한 짓을 한다는 건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원격수업에 대한 거부(파업)’이다. 지금 SNS에서는 ‘좋은 원격수업의 모델’을 제시하는 사람이 꽤 있다. 전부터 해왔던 IT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아예 플랫폼을 구축해서 서비스하는 선생님도 있고, 원격수업에서 쓸 수 있는 자료를 패키지로 만들어서 공유하는 선생님도 있으며, 원격수업의 프로세스를 제시하고 단계별 세부내용을 첨부해 제공하는 선생님도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물음. ‘원격수업으로 교육적 만남을 대신해도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졌는지 모르겠다. 그저 교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걸 지침을 지켜서 하면 끝인가?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의문도 제시하면 안 될까? 물론 상황은 교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나 교육청, 아니면 학교 관리자가 결정한다. 그 결정에 저항할 수는 없다. 아무 권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자로 ‘동영상 링크’만 떨렁 보내는 것 따위의 소극적 거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직무 태만’이라는 손가락질을 견뎌 내야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쉽지도 않은 일이고 말이다. 실제로 나의 아이는 유치원생인데 벌써 2주정도 ‘원격수업’중이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하루 수업이라며 2분 내외의 4~5개 동영상 링크를 올려준다. 나는 선생님의 원격수업을 ‘직무 태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치원생에게 적극적이고 화려한 영상수업은 오히려 독이다. 차라리 안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른’으로서 ‘교육전문가’로서 우리 담임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내가 교육청 홈페이지에 민원을 올린다면 나는 선생님의 ‘원격수업’을 직무태만으로 해석해서 더 적극적으로 ‘원격수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담임 선생님의 교육방식은 ‘원격수업 지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등교수업이 가능하도록 교실에 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나는 우리 선생님의 수업을 ‘철없는 아이의 행동’으로 치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자율 활동의 보장’이다. 코로나 상황 이전까지 학교의 교육은 아이를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창의성을 억누르고 규격화시키며 구글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 죽은 지식을 암기시킬 뿐이라면서 조롱당했다. 학교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나쁜 영향을 받는다면서 1년을 쉬어갈 수 있는 덴마크의 인생학교가 최근 관심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시험 없이 자기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자유학기제’가 도입되었듯 학교 수업에서 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떨어트리는 것으로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얻으려는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 동안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쉽지 않았으나 만약 선생님이 문자로 ‘동영상 링크’만 떨렁 보내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여유시간이 확보되는 것 아닐까? 오히려 적극적 영상수업으로 일과시간 중 아이들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만 붙잡아 두는 것이 더 나쁜 일이지 않을까? 실제로 요즘 나는 원격수업으로 전환화되어 등교하지 않는 나의 아이와 이런 수업도 해 보고 저런 수업도 해 보면서 나름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만약에 선생님께서 영상수업을 하거나 촘촘하게 짜여진 수업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고, 친구들이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빡빡한 수업은 아이에게 엄청난 고역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렇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이유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물론 단순히 말 그대로 나태하고 책임감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가치판단을 단순히 수업 형태만을 보고 결론내리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그러한 실천을 하고 있는 선생님도 전문성을 가진 ‘어른’이기 때문이다. 우치다 선생님의 합기도 스승이 말씀하셨듯. 그 선생님의 수업도 수업이다. 내가 그 선생님을 나태하다거나 좋은 수업 모델을 따라하게 요구하는 것으로는 아무리해도 내 수업이 좋아지지 않는다. 좋아질 리가 없다. 오히려 나빠질 것이다. 함부로 ‘아이’대하듯 그 선생님의 수업을 나태한 것이라고 판단해 버리는 순간 ‘교사를 아이처럼 대하는 문화’가 강화되어 나의 수업실천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이 ‘아이의 행동’을 함부로 재단하듯 비난하며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를 ‘전문가’로서 직업윤리를 가진 ‘어른’으로 신뢰하기. 우선 교사 자신들부터. 그리고 자신의 교육실천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이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Teachers, be ambitious and be proud of oursel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