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선생 [교육교육열매:초인계]

[TOB in 인지학]2020년 인지학 여행-열두번재 시간 : 감성 교육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소비자와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 존재, 그리고 교육

2020년 9월 24일 무등자유발도르프 학교 인지학공부 12회


소비자의 메타포가 지배하는 교육


소위 미래 산업, 다른 말로는 4차 산업을 혁명적으로 하루 빨리 실현시키려는 분위기가 ‘서비스 산업’의 지배력을 상당히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현 시점에서 서비스업은 여전히 영향력 있는 산업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주류 산업의 영향력은 교육에 대한 상상력까지도 지배한다. ‘농업’이 주류이던 시기에는 교육을 ‘농업의 용어’로 바라보고 ‘씨앗의 메타포’를 사용해서 설명하려 했고, ‘공업’이 주류이던 시기에는 교육에 ‘공업의 문법’을 적용하여 ‘계획-실행-평가’라는 도구를 통해 규격화된 인간을 정밀하게 생산해 내는 ‘공장제품의 메타포’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흐름을 이어받아 ‘서비스 산업’이 핵심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현재는 교육이 ‘소비자의 메타포’를 통해서 이해되어 지고 있다.




‘학생’, 좀 더 확장하면 ‘학부모’까지, 은 ‘소비자’의 권리를 누려야 하는 존재이고, ‘학교’와 ‘선생님’은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게 ‘무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도 이미 꽤 오랜 전 일이다. 먼저 학부모가 수행하는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교육의 3주체 중 하나로서의 ‘학부모’가 아니라 그야말로 깐깐한 민원인 혹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블랙 컨슈머’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학생의 모습은 어떨까? 소비자로서의 학생은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망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추구하려는 지상과제를 안고 학교에 온다. 소비자는 아이와 어른의 구분을 근본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소비자의 세상 속 인간들은 절대적으로 평등한 존재들이다. 소비에 요구되는 대가만 정당하게 지불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른이 되었든 아이가 되었든 그저 한 사람의 온전한 소비자일 뿐이다. 어른과 같은 욕망을, 어른과 같은 방식으로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해도 되고, 추구해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학생은 이제 학교에서 단지 몸집만 작은 어른이라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소비자의 메타포’에 의해 교육을 이해하는 방식과 교사, 학생, 학부모의 역할이 달라짐에 따라 학교에는 어떤 경향성을 띈 ‘변화’가 생겨났다. 몸집만 작은 어른인 학생들에게 문자 그대로 어른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길 요구하는 한편 교육을 통해서는 남들보다 앞서는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교육의 실행 전에 동의를 넘어선 허락을 구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치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온전히 떠안는 게 책임감 있는 멋진 어른의 모습이라는 이미지를 품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의 세계에서는 ‘좋고 싫음’만이 중요한 문제이다. 좋아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싫어하는 것은 당당하게 거부한다는 원리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될까? 어른의 세계를 그대로 학교로 옮겨와서는 어른과 같은 방식으로 훈련시키다가 몸집만 작은 어른이 이제 몸집마저 어엿한 어른처럼 커졌을 때 그 즉시 현명한 소비자로서 자기 욕망을 경제적으로 추구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


어른과 아이는 변하지 않는 소비자로서 질적인 차이가 없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몸집의 크기만 차이가 있는 걸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교육


무등자유발도르프학교에서 매주 저녁에 열리는 인지학 공부모임의 ‘장승규 선생님’께서는 인간은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존재로서 어른은 어른의 삶이 있고, 아이는 아이의 삶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다른 것을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차이를 통한 구분을 명확히 하려는 것은 아이들을 복종시키려고 하거나 아이들을 업신여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 존재가 학교와 교사에게 요청하는 것’들을 제대로 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존재인 소비자가 그 때 그 때 ‘좋아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존재인 인간이 그 때 그 때 ‘변화의 과정에 필요로 하는 것’을 온전하게 전해주는 교육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어른의 방식과 아이의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을 통해 교사들이 추구해야 할 ‘교육적 과제’를 드러내어 보여 주셨다. ‘교육적 과제’는 ‘감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 만져보고 먹어보고 냄새 맡는 등의 행한 것을 머리로 가져가서 사고할 수 있도록 잘 연결시켜주는 것이 ‘감성’이라고 한다. ‘감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감성’이 그저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것이라는 식의 인식을 통해서는 별다른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몸과 영혼을 조화롭게 잘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이 무궁무진해 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깨우쳐주는 ‘인지학 공부모임’ 정말 대단한 곳임에 틀림없다. 나도 그곳에 함께 할 수 있다니 어떻게 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매번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또다시 감사한 마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