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선생 [교육교육열매:초인계]

[TOB in 인지학]2020년 인지학 여행-열세번재 시간 : 어느 공익근무요원 이야기 / 그런데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나의 존재, 나의 신체부터 제대로 인식하자

2020년 10월 8일 무등자유발도르프 학교 인지학공부 13회

어느 공익근무요원 이야기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 공익근무요원이 한명 있었다. 학교에는 특수반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옆에서 지원하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손’이 필요한 일에 도움을 주는 공익군무요원이 종종 배치된다. 굳이 ‘공익근무요원’임을 밝히는 것은 업신여기거나 낮게 취급하려는 의도나 편견을 은연중에 풍기는 동시에 경계를 짓고 구별하여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교라는 비교적 동질성이 높은 공동체 속에 함께 어울렸던 제 3자로서의 위치를 잘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 때의 학교는 분위기가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런 분위기의 존재 민주적 공동체에는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교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교직원 친목이 매우 활성화 되어 있어서 학교 내 모든 구성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는 곳이었다.

그냥 지나가며 인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적인 친교활동이 잦았다. ‘그 때의 공익근무요원’은 학교 이름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미국의 어떤 대학에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군복무를 공익근무로 대체하고 있는 중이었다. ‘타악기’를 전공하고 있어서 교직원들이 연구회를 만들어 ‘공익근무요원’에게 잠시 ‘드럼’ 등 리듬 악기 연수를 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어느 날 ‘ 공익근무요원’은 자신이 직접 수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6학년 아이들에게 ‘특강 형식’으로 ‘공부를 잘 하는 비법’, ‘진짜 제대로 된 공부’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타악기’ 전공자로서 교내 선생님들에게 타악기 연수도 무료로 해주고 있으며 미국의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영어도 잘 할 걸로 예상되는 소위 능력자로 인식되고 있던 ‘공익근무요원’이 6학년 아이들에게 ‘공부비법’에 대한 강의를 하고 싶다고 하자, 나는 6학년이 아니었기에 실제 구체적인상황은 모르지만, 6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공익근무요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뿐이다.

‘공익근무요원’은 나에게도 인쇄물 꾸러미를 하나 주면서 자신이 6학년에게 어떤 특강을 할 것인지 소상하게 설명해주었다. ‘공익근무요원’은 인쇄물에 담긴 내용이 자기가 직접 정리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공교육 커리큘럼인 12년의 초,중,고 교육과정 전체’를 핵심요약 해 놓았으니 나 역시 그걸 참고해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을 가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정고시 출신인 자신이 공부를 해 본 결과 12년의 공교육 커리큘럼은 2달이면 전부 마스터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담아놓은 귀한 자료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의 아이들은 2달이면 다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무려 12년 동안 배우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으며, 자신이 보기에 이러한 진실을 깨닫고 ‘공부 비법’을 통해 꼭 배워야 할 것들만을 최대한 빨리 배운 다음 학교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공부 비법’을 전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예전에도 자기가 만든 ‘공부 비법 자료’를 통해서 몇 명의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 경험이 있다면서 6학년 아이들에 대한 수업에 자신감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언제 수업을 할지 6학년 담임 선생님들과 지금 스케줄을 조정중이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나는 ‘자료’를 선뜻 주어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공익근무요원’의 ‘공부 비법’은 교사가 아닌 자가 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주장일 뿐일까?

아니면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의 치기어린 주장일까?

혹은 ‘미국 유학생’이라는 것에서 피어난 우월감에 으스대는 발언인 걸까?

일단 나는 ‘공익근무요원’의 핵심 요약이라는 말에 주목하였다. 핵심을 요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적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위한 ‘핵심’일 수밖에 없다. ‘공익근무요원’은 무엇을 위한 핵심을 정리했다는 것일까?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시험’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내용의 핵심인 것이다. 그것이 ‘검정고시’가 되었든, 아니면 ‘수능’이 되었든지 간에 초, 중, 고등학교의 교육에 마침표를 찍어줄 어떤 ‘시험’ 말이다. ‘시험 통과’라는 목적과 핵심 요약의 관계에만 집중하면 ‘공익근무요원’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험 통과’에 필요한 내용적 지식을 2개월 안에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다소 과장으로 느껴진다면, 현실적으로 2개월이라는 기간을 넉넉잡아 1년이나 2년으로만 늘리면 누구도 쉽게 반박하기는 힘든 ‘사실적 주장’이 된다.

저러한 주장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일리 있는 말이긴 하다. 특별히 잘못된 점을 발견해 내기도 쉽지 않다. 문제점을 살펴보려면 조금 다른 곳을 살펴봐야만 한다. 꼭 살펴봐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의 단위’이다. ‘공익근무요원’이 ‘2개월 안에 모든 교육과정을 다 배울 수 있는 핵심 요약이 가능하다’라는 판단을 내린 것은 시간의 단위를 딱 ‘학창 시절’에 한정했을 때만 자연스러운 이야기이다. 만약 ‘시간의 단위’를 살짝 늘여서 ‘취업 전’까지의 단위로 바라보면 한참 모자랄 수밖에 없는 ‘핵심 요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교육적 사태를 해석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사용했던 지배적인 단위는 다름 아닌 ‘학창 시절’이라는 단위였다. 물론 지금도 대다수의 수험생 학부모의 인식은 ‘대학입학’ 전이라는 시간의 단위에 머물러 있다. 오직 ‘대입 경쟁’의 승리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최근에는 그 시간의 단위라는 것이 조금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수험생 학부모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시간 단위가 ‘수능’을 기점으로 대체로 확대되듯, 서열화된 대학이 서열화된 취업으로 자동 연결되지 않는 시대가 되니 교육을 규정하는 시간 단위도 ‘취업 전’까지로 약간 길어졌다. 그래서 최근 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취업과 취업 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활 습관의 개선 등으로 인해 ‘인간의 시간’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는 반면 교육을 규정짓는 ‘시간의 단위’는 그 변화폭이 매우 작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의 단위’를 더욱 줄이고 줄여서 지금 당장 교육의 결과를 확인하지 않으면 못 참는 등 반대로 달려가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으니 아쉬움을 너머 안타깝기까지 하다.

‘시간의 단위’를 인간의 물질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자꾸만 잘게 줄여나가려고 하는 경향성을 뒤집어서 교육을 바라보는 ‘시간의 단위’를 50년, 100년으로 확대해 보는 상상을 한다. 인생 전체, 인간 전체라는 단위로 바라보는 교육은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똑같은 ‘실용’을 말하더라도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시험 통과를 위한 팁이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자리 잡는 팁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위한 팁’ 일 테니까 말이다. 또한 똑같이 교과 내용을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지식의 암기나 지식의 활용법을 익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나저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란 무엇일지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연구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번 인지학 공부 모임에서 장승규 선생님께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나의 신체를 물질로써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해 보는 작업을 통해서 ‘물질’을 볼 수 있는 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감각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향유 할 뿐인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고 반성하며 내 감각을 올바른 모습으로 만들어갈 때만이 ‘정신’이 내 안에 들어와서 자아가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떠올린 후 교육적인 과제로서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렵다... 어렵지만 실천을 미룰 수는 없다. 실천을 미룬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교실 속 시계는 성실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래의 실천은 연대를 통해서 현실로 조금 앞당겨 올 수 있을 것이다. 연대의 길을 쉬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 일단 해야 할 지금의 과제라는 생각으로 지치지 말아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