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선생 [교육교육열매:초인계]

[TOB in 인지학]2020년 인지학 여행-열한번재 시간 : 씨앗과 교육 , 어떤 언어로 교육을 말해야만 하는 걸까와 어떻게 씨앗을 잘 자라나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10월 7 업데이트됨

2020년 9월 17일 무등자유발도르프 학교 인지학공부 11회

씨앗과 교육 : 어떻게 씨앗이 잘 자라나게 할 것인가?


박동섭 교수님은 ‘일리의 교육론’에서 교육제도가 ‘이전에 지배적이었던 산업 형태’를 모델로 해서 제도설계 되어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전까지는 당연히 주된 산업이었던 ‘농업’을 모델로 해서 교육제도가 설계되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얼마 전까지 교육은 주로 ‘농업 용어’로 설명되곤 했다. “씨를 뿌리고 물과 비료를 주고 햇볕을 쬐게 하고 풍수해와 병충해로부터 지키고 수확기에는 ‘자연의 은혜’를 향유하는” 농업의 어휘가 교육 곳곳에 침투해 있다.




농업 모델로 설명하는 교육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씨앗’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레 아이가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을지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조금 뒤처지는 아이에게는 ‘대기만성’이라는 위안을 줄 수도 있었다. 인간의 도움으로 식물이 더 잘 자라날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사실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자연에 많은 것을 맡겨야만 했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나 강수량, 그리고 해충의 출몰도 뒤늦게 대응하게 될 뿐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어떤 결실을 맺던지 간에 그것은 ‘하늘의 은혜’이지 인간에 의한 정밀한 공정관리의 소산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한 후에는 교육은 이제 ‘공업 용어’로 설명되고 이해되었다. “시방서에 기초해서 규격대로의 제품을 납기일에 맞게 제조하려고 모든 공정을 계획 관리”하는 방식을 학교에 요구했다. 교육과정을 촘촘하게 계획하고, 매 단원 매 차시 수업 시간에는 ‘수업지도안’이라는 걸 미리 작성하게 했다. 수업지도안에는 교사의 발문부터 학생의 대답까지 수업의 모든 것이 미리 계획되어져 있는데, 지도안에 인쇄된 글씨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수업이 재현되면 될수록 훌륭한 수업이라고 평가받았다. 이러한 철저한 계획표 아래 진행되는 교육의 분위기 속에 아이들은 객관적인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문제를 맞추는 기술을 반복 숙달하는데 매진하였다. 시험을 통해 점수가 나오면 그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으며 이후의 인생은 대체로 평가의 등급에 따라 규정되었다.



2000년을 전후로 해서 또 한번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최근의 학교는 ‘서비스업의 용어’가 교육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씨앗’이 아니라 ‘소비자’이다. 교육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교육 서비스’를 고객의 요구에 맞춤으로 제공할 것이 학교에 요구되고 있다. 소비자는 씨앗과는 달리 등장하는 순간 이미 완성품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 전제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상정된 주체’를 가리킨다. 교육 소비자인 지금의 학생은 교실에서 전능감을 느끼며 ‘주인 행세’를 하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으며, 불완전한 소비자에서 완전한 소비자로의 변화를 위해 ‘자신의 욕망’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농업적인 관점에서 씨앗의 성장이나 공업적인 의미에서 제품의 규격화로 표현할 수 있는 교육의 과제에는 현명한 소비자 행세를 위해 무관심을 지불한다.



2020년 현재는 어떤 상태일까? 안타깝게도 서비스업은 벌써부터 절대적인 지배력을 상실해가는 산업이 되었다. 이제는 이른바 ‘미래 산업’, ‘4차 산업’이라고 말해지는 지식•정보 산업의 지배력이 점차 모든 산업을 압도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부터 교육을 말하는 용어들도 ‘역량’, ‘융합’, ‘통합’ 등의 어휘들을 필두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산업 형태를 모델로 재구축되며 교육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변화의 한복판에 있기에 한마디로 ‘이렇게 변했다.’라고 딱 잘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교육 소비자’라는 용어가 이제는 철 지난 용어처럼 보이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배적인 산업의 형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변한다. 그리고 그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문제는 시대가 변화했을 때 이전의 산업 형태를 모델로 해서 설계 된 제도는 심각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서 불협화음이 일어나면 그 즉시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제도를 당장 폐기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새롭게 바뀌는 시대의 모습에 교육제도와 교사, 교육 그 자체가 아무리 빨리 적응하여 혁신을 지체 없이 이뤄낸다고 한들 이런 방식이어서는 늘 시대의 뒤꽁무니만 교육이 졸졸졸 쫒아가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제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쫒아가기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장담하기가 어려워졌다. 교육이 '모두까지'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도 한몫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는 교육제도와 교육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아직까지는 유효기간이 남아있는 ‘서비스업의 용어’로 야무지게 교육제도와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가 ‘미래 산업’으로 시대가 변화하면 그 때가서 맞춰 가면 되는 걸까?


아니면 미래를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미래를 선취할 수 있도록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상상해 보고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면 되는 걸까?

아니 잠깐!!! 그런데 산업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교육제도를 설계하고 교육을 말하는 것은 교육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맞기는 하느냐는 궁금증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혹여 산업의 용어가 교육의 본질을 메타포로서 훌륭하게 보여주는 도구라고 했을 때, 우선적으로 인간의 성장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산업’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최신 산업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용어를 빠르게 받아들여 업데이트에 집중하는 것이 인간의 성장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농업, 공업, 서비스업, 지식·정보 산업, 혹은 미래의 어떤 산업 중에서 인간과 더욱 찰떡같이 공명하는 산업의 형태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복잡하게 보이지만 놀랍게도 답은 의외로 자명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산업의 형태 가운데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은 단 하나. ‘농업’뿐이니 말이다. 인간을 생명력이 있는 존재-다양한 감정이 있는 존재-정신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비유에 사용되는 대상도 생동감이 있고-색깔이 보이고-지향성이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교육을 ‘농업의 용어’로 표현해 보려고 하는 노력은 전근대 시대에 매몰된 시대착오적 행위가 아니라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씨앗’으로 비유하고, 씨앗의 메타포로 인간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그 가능성을 잘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서의 교육을 추구하는 노력이야말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똑바로 세운 채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을 제대로 이뤄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11번째 인지학공부모임에서는 “어떻게 씨앗이 피어나는가?”에 대한 질문을 출발점으로 씨앗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는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식물의 발달단계라는 메타포가 교육에는 어떤 깨달음을 주고 있는지도 이어서 탐구하게 되었다.


정답을 그냥 던져주시는 강의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 시간까지 아이라는 씨앗이 커져간다고 할 때 씨앗의 성장을 둘러싸고 있는 땅, 물, 공기, 태양이 각각 교육의 장면 속에서 무엇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명상’해 보고 기억해 오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쉬운 숙제는 아니었지만 명상을 하면 할수록 '씨앗'의 메타포에 의한 사고가 교육에서 멀어지는 듯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기계의 메타포나 소비자의 메타포 였다면 그렇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농업의 용어’로 표현되는 교육과 인간은 나에게 어떤 과제를 드러나주게 할까?


나는 나의 삶 속에 어떤 과제를 미리 심어 두었길래 지금 명상을 통해 그것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떠올려본 것들과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합쳐볼 수 있는 다음 인지학공부모임이 벌써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나를 잡아당긴다. 두근두근 끝.